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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시장의 교차점 탐색: 정부 모델 비교 분석 및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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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남규규 2025. 7. 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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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시장의 교차점 탐색: 정부 모델 비교 분석 및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서론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사이의 논쟁은 현대 국가 경영의 중심에 자리한, 해결되지 않은 핵심적 긴장 관계이다. 이 논쟁은 경제 정책부터 사회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규정하며,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핵심 가치들 사이의 복잡한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질문은 한 사회가 자유, 평등, 효율성, 안정성이라는 가치에 어떻게 우선순위를 부여하는지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이 논쟁이 단순한 이념적 대립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실질적 갈림길이 되는 이유는, 정부의 규모와 역할에 대한 선택이 국민의 삶의 질, 경제의 활력, 그리고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본 보고서는 이 중대한 논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 역할에 대한 철학적, 경제학적 토대를 명확히 하고,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규정하는 다차원적 프레임워크를 정립한다. 이는 단순히 재정 규모를 넘어 정부의 규제 범위와 정책적 지향점까지 포괄하는 nuanced(미묘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 이러한 정부 모델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대표적인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엄밀하게 분석한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작은 정부' 실험과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큰 정부' 모델, 그리고 독자적 길을 걷고 있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통해 각 모델의 명암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셋째, 계량적 지표와 정책적 질적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이 현재 글로벌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모순과 과제를 명확히 드러낼 것이다.

넷째, 앞선 분석을 바탕으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증거 기반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 필요한, '크기'의 문제를 넘어 '효율성'과 '전략적 역할'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정부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국회의사당사진


제1장: 정부 역할의 철학적·경제적 토대

1.1. 스펙트럼의 정의: '야경국가'에서 '복지국가'까지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용어는 정부의 규모와 역할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관점을 대표한다. '작은 정부'는 시장의 자유, 효율성,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 모델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낮은 세금과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부문의 활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반면, '큰 정부'는 사회적 형평성, 안정성, 그리고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이 모델은 높은 세금을 재원으로 광범위한 사회 프로그램과 규제를 통해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소득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의 크기를 측정하는 전통적인 계량 지표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율, 공공 부문 고용 비중, 조세부담률, 그리고 사회복지 지출의 범위 등이 있다. 이러한 지표들은 국가 간 비교를 위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공하지만, 정부의 영향력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규모(size)'와 '범위(scope)'를 구분하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 지출이 적더라도 강력한 규제 권한이나 국영 기업을 통해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거나, 복잡한 인허가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는 재정 지표상으로는 '작은 정부'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경제 활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강한 정부'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규모뿐만 아니라 규제의 강도, 산업 정책의 성격, 공공 부문의 역할 등 질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다차원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시각은 특히 대한민국과 같이 과거 발전국가 모델의 유산을 지닌 국가를 분석할 때 더욱 중요하다.  

 

1.2. 이념적 기반: 자유, 형평성, 그리고 사회 계약

'작은 정부'와 '큰 정부'의 대립은 단순히 경제 정책의 차이를 넘어, 자유와 평등이라는 핵심 가치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다.

'작은 정부'의 철학적 뿌리는 존 로크(John Locke)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같은 신자유주의 사상에 깊게 맞닿아 있다. 이 관점에서 정부의 존재 이유는 개인의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국한된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자아실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야경국가(night-watchman state)'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이 사상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자유이며, 자유로운 경쟁이 곧 사회 전체의 발전과 경제적 역동성을 이끌어낸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반면, '큰 정부'의 철학은 사회민주주의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사상에 기반을 둔다. 이 관점은 통제되지 않는 개인주의와 시장의 힘이 필연적으로 부의 편중,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경제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킨다고 본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도덕적, 경제적 의무를 지닌다. 이 모델은 사회적 형평성, 기회의 평등, 그리고 연대(solidarity)와 같은 집단적 가치를 우선시하며, 정부를 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자로 규정한다.  

 

이처럼 두 모델의 근본적인 차이는 개인과 공동체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지,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발생한다. 작은 정부론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 규모의 확대를 경계한다면 , 큰 정부론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보장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가의 역할을 옹호한다.  

 

1.3. 경제적 논리: 시장실패 대 정부실패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철학적 기반뿐만 아니라, 시장과 정부의 효율성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부 개입의 정당성은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는 개념에서, 그리고 개입에 대한 비판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

1.3.1. 개입의 근거: 시장실패

시장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실패하는 현상인 '시장실패'는 정부 개입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 근거를 제공한다. 시장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 공공재(Public Goods)의 존재: 국방, 치안, 법률 시스템과 같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을 소비에서 배제할 수 없고(비배제성),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줄이지 않는(비경합성) 재화는 민간 시장에서 이윤 창출이 어려워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세금을 통해 직접 공급해야 한다.  
     
  • 외부효과(Externalities): 어떤 경제 활동이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의도치 않은 혜택(긍정적 외부효과)이나 손해(부정적 외부효과)를 주는 경우다. 환경오염과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지만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않아 과잉 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예방접종이나 기초 연구와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지만 개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적어 과소 생산된다. 정부는 세금, 부담금, 규제를 통해 부정적 외부효과를 억제하고, 보조금 등을 통해 긍정적 외부효과를 장려해야 한다.  
     
  • 독과점과 시장지배력: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면 가격을 인상하고 생산량을 줄여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정부는 공정거래법과 같은 독점규제 정책을 통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거래 당사자 간에 정보 격차가 존재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는 차량의 결함을 알지만 구매자는 모르는 경우, 혹은 보험 가입자가 보험사보다 자신의 위험에 대해 더 잘 아는 경우다. 이는 불리한 조건의 상품만 시장에 남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나, 계약 후 성실히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이어져 시장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 규제나 정보 공개 의무화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  
     

1.3.2. 자제의 근거: 정부실패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현상을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라고 한다. 정부실패는 다음과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다.

  • 제한된 정보와 지식: 정부는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처럼 분산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책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 관료제의 비효율성(X-inefficiency): 민간 기업과 달리 경쟁 압력과 이윤 동기가 없는 공공 조직은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경향이 있다. 이는 불필요한 규제(Red Tape)나 무사안일주의로 나타난다.  
     
  • 지대추구 행위와 정치적 영향력: 특정 이익집단이 로비나 정치적 압력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제나 보조금을 얻어내는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자원 배분을 왜곡시킨다. 규제 기관이 산업계에 '포획(capture)'되는 현상도 여기에 해당한다.  
     
  • 정책의 시차와 의도치 않은 부작용: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은 더디고, 한번 시행된 정책은 되돌리기 어렵다. 또한, 선의로 시작된 개입이 가격 통제가 물품 부족을 초래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3.3. 변화하는 시대정신: 이론과 위기의 상호작용

정부 역할에 대한 지배적인 경제 이론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적 위기에 대응하며 변화해왔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는 19세기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1929년 대공황이라는 전례 없는 시장실패 앞에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이다. 케인스는 유효수요 부족이 대규모 실업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케인스주의를 받아들여 복지국가를 건설하고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1970년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닥치자 케인스주의적 해법은 효력을 잃었다. 이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낳았고, 프리드먼과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영국 대처 정부의 민영화와 미국 레이건 정부의 '레이거노믹스'는 감세, 규제 완화, 노동 시장 유연화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회복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추상적인 이론의 대결이 아니라, 대공황,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위기에 대한 대응 과정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는 '올바른' 정부 모델이란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현재의 정책 방향 역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저성장, 불평등,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등)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제2장: 국제 사례 연구: 현실 속의 정부 모델

이론적 논의를 넘어, 각기 다른 정부 모델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구체적인 국가 사례를 통해 분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본 장에서는 '작은 정부'의 원형으로 꼽히는 미국, '큰 정부'의 대표 격인 북유럽 국가들, 그리고 독자적인 제3의 길을 모색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검토한다.

2.1. 작은 정부의 원형: 미국과 신자유주의의 유산

미국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이른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위기에 처한 케인스주의적 큰 정부 모델에 대한 명확한 반작용이었다.

2.1.1. 정책의 골격: 레이거노믹스의 4대 원칙

레이거노믹스는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 네 가지 핵심 정책을 기둥으로 삼았다.  

 
  1. 대규모 감세(Tax Cuts): 경제 주체들의 투자와 근로 의욕을 고취시킨다는 명분 아래,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법인세 부담도 대폭 낮췄다. 이는 부유층과 기업의 자본 축적을 통해 투자가 활성화되면 그 혜택이 저소득층에게도 흘러 들어간다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conomics)' 이론에 기반했다.  
     
  2. 광범위한 규제 완화(Deregulation): 금융, 통신, 에너지, 운송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정부의 규제를 대대적으로 철폐하여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시장 경쟁을 촉진했다.  
     
  3. 긴축 통화 정책(Tight Monetary Policy):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주도한 고금리 정책을 통해 시중 통화 공급을 줄여 1970년대 내내 미국 경제를 괴롭혔던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주력했다.  
     
  4. 노동조합 약화(Anti-Union Stance): 1981년 항공관제사 노조(PATCO)의 파업에 대해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불응한 조합원 전원을 해고하는 등, 노동조합에 대한 강경한 대응으로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자 했다.  
     

2.1.2. 성과와 그림자: 레이거노믹스의 양면성

레이거노믹스가 남긴 유산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이 정책이 미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 시기, 고질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종식되었고, 높은 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규제 완화와 감세는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과 같은 신기술 기업의 등장을 촉진하며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 시대를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심각한 대가가 따랐다. 단기적 경제 성장을 위해 미국 사회는 장기적인 '사회적 적자(social deficit)'를 떠안아야 했다.

  • 국가 부채의 폭발적 증가: 대규모 감세는 정부의 재정 수입 급감으로 이어졌으나, 국방비 지출은 오히려 늘리면서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레이건 임기 8년 동안 미국의 국가 부채는 세 배나 증가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던 GDP 대비 부채 비율 감소 추세를 역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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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득 불평등의 극적인 심화: 감세 혜택이 고소득층과 자산가에게 집중되면서 소득 격차는 급격히 벌어졌다. 1979년 상위 1% 소득자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4%였으나, 1989년에는 11.0%로 급증했다. 반면 하위 90%의 소득 비중은 감소했으며, 실질 임금은 정체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지니계수는 유럽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 캘리포니아주 같은 곳에서는 최상위층 소득이 최하위층의 11배에 달하는 극심한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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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안전망의 침식: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철학은 공공 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켰다.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보편적 건강보험 제도가 없으며, 공교육과 사회 복지 제도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위험에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최근 '절망의 죽음(deaths of despair)' 현상에서 보듯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훼손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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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이동성의 약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와 달리, 미국의 사회 이동성은 많은 유럽 복지 국가들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저소득층 아버지를 둔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저소득층에 머무를 확률이 덴마크(25%)보다 미국(42%)에서 훨씬 높다. 이는 불평등이 세대를 이어 고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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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미국의 작은 정부 모델은 단기적인 경제 효율성과 역동성을 얻는 대가로 장기적인 사회 통합과 안정성을 희생시켰다. 당시의 경제적 성공은 오늘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되돌아와 오히려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지표 1980년 (레이건 집권 직전) 1988년 (레이건 임기 말) 2021-2023년 (현재)
인플레이션율 (소비자물가지수) 13.5% 4.1% 3.4% (2023년)
실질 GDP 성장률 -0.3% 4.2% 2.5% (2023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31.8% 51.9% 129.0% (2023년)
상위 1% 소득 점유율 8.1% (1979년) 12.5% (1989년) 19.0% (2021년)
지니계수 (가처분소득 기준) 약 0.31 (추정) 약 0.34 (추정) 0.397 (2021년)
출처: 및 연방준비은행, 세계은행 데이터 기반 재구성  
 
 
 

       
       

2.2. 큰 정부의 원형: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큰 정부'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이들 국가는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를 통해 사회적 평등과 안정을 추구하며, 이는 미국 모델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2.2.1. 정책의 골격: 보편적 복지국가

북유럽 모델의 핵심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 시스템에 있다.

  • 보편적 공공 서비스: 모든 국민에게 소득이나 자산 수준과 관계없이 높은 수준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 서비스는 대부분 무상 또는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되며, 공공병원이 의료 시스템의 중심을 차지한다. 교육 역시 대학 박사 과정까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과도한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교육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 관대한 사회보험: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에 대비한 사회보험 제도가 매우 발달해 있다. 특히 실업급여 제도는 해고된 노동자가 재취업할 때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기업의 유연한 고용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의 기반이 된다.  
     
  • 적극적 소득 재분배: 높은 수준의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세율을 유지한다. 소득세, 법인세, 소비세율이 전반적으로 높으며,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은 공공 서비스와 사회 수당의 형태로 가계에 이전되어 소득 불평등을 크게 완화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조세를 통한 재분배 비율은 45-46% 수준으로, 한국(25%)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2.2.2. 성공의 기반과 새로운 도전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단순히 높은 세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독특한 사회·경제적 기반이 존재한다.

  • 높은 사회적 신뢰와 연대 의식: 국민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을 깊이 신뢰하고, '내가 낸 세금이 공동체를 위해 쓰인다'는 강한 사회적 연대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높은 조세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문화 자본이다.  
     
  •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적 대화: 노조 조직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매우 높으며, 중앙 집중적인 임금 교섭을 통해 산업 전반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이러한 강력한 노동의 힘은 복지국가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 혁신을 통한 성장: 높은 복지 수준이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혁신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견고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왔다. 이는 복지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이자 안정적인 내수 시장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성공적인 모델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 높은 재정 부담과 조세 저항: 높은 세율은 근로 및 투자 의욕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에 끊임없이 직면하며, 고소득 전문직이나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세금 부담에 대한 불만이 존재한다.  
     
  • 인구 고령화의 압박: 전 세계적인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북유럽 국가들에도 예외가 아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부양해야 할 노년층이 증가하면서, 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여 복지 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세계화와 이민 문제: 이민자들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노동 시장과 사회 시스템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저숙련 이민 노동자들의 증가는 기존의 평등주의적 임금 체계와 복지 시스템에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해 북유럽 국가들 역시 시장 원리를 일부 도입하고 복지 제도를 수정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북유럽 모델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지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OECD 평균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 (%) 49.3 (2022) 56.6 (2022) 49.9 (2022) 45.9 (2022)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 (%) 24.9 (2022) 21.7 (2022) 25.3 (2022) 21.1 (2022)
GDP 대비 조세부담률 (%) 42.5 (2022) 39.7 (2022) 42.8 (2022) 34.0 (2022)
지니계수 (가처분소득 기준, 2021) 0.287 0.264 0.278 0.316
총 취업자 대비 공공부문 고용 비율 (%) 29.1 (2021) 30.8 (2021) 29.1 (2021) 21.6 (2021)
1인당 GDP (PPP, 현재 국제달러) 66,201 (2023) 94,659 (2023) 74,957 (2023) 58,185 (2023)
출처: 및 OECD Statistics 데이터 기반 재구성  
 
 

         
         

2.3. 실용주의적 제3의 길?: 싱가포르의 국가주도 자본주의

싱가포르는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극단적인 시장 개방성과, 국민의 삶 핵심 영역을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가부장적 개입주의가 결합된 형태다.

2.3.1. 국가 개입의 핵심 기둥

싱가포르 모델은 낮은 세금과 최소한의 복지 지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작은 정부'에 가깝지만, 다음과 같은 강력한 국가 개입 장치를 통해 사회 안정을 유지한다.

  • 공공주택(HDB): 주택개발청(Housing & Development Board, HDB)이라는 국가 기관이 전체 주택의 약 80% 이상을 직접 건설하여 저렴한 가격에 국민에게 분양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90% 이상이 자가 주택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정부는 주택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국민의 자산 형성을 돕고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핵심적인 국가 통제 수단이다.  
     
  • 중앙연금기금(CPF): 중앙연금기금(Central Provident Fund, CPF)은 모든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종합 사회보장 저축 제도다. 소득의 상당 부분을 강제로 저축하게 하여 은퇴, 의료, 주택 구입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한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생애 주기에 걸친 재무 계획을 직접 설계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복지 대신 개인의 자산 형성을 통한 '자립'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 국영기업(Temasek Holdings): 정부가 소유한 국부펀드인 테마섹 홀딩스는 싱가포르항공, 싱텔(통신) 등 국가 기간산업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로서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정부가 시장의 '심판'을 넘어 '선수'로 직접 뛰며 국가 경제를 전략적으로 이끌어가는 발전국가 모델의 특징을 보여준다.  
     

2.3.2. 성과와 한계

싱가포르의 실용주의적 모델은 놀라운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을 동시에 달성했다. 낮은 세금과 친기업 정책으로 막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여 세계적인 금융 및 물류 허브로 성장했으며 , 동시에 HDB와 CPF를 통해 주거 안정과 노후 대비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이 모델은 민주주의 국가가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싱가포르의 경제적 성공은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가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 정치 환경이 이러한 강력한 국가 주도 개입을 가능하게 했다. 싱가포르 모델은 복지(welfare)가 아닌 '일하는 복지(workfare)'를 강조하며, 일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지원만 제공한다. 이는 서구적 의미의 복지국가라기보다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고도로 발달된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가깝다. 따라서 싱가포르의 사례는 정부 역할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법을 보여주지만, 그 성공 방식이 민주적 가치와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제3장: 대한민국, 정부 스펙트럼 위의 좌표

대한민국은 과연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장에서는 객관적인 계량 지표와 현재 추진 중인 정책의 질적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한국 정부의 현 좌표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분석 결과는 한국이 통계적으로는 명백한 '작은 정부'이지만, 정책적으로는 '큰 정부'로 나아가려는 압력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기조가 충돌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3.1. 계량적 평가: 통계로 본 한국 정부의 규모

주요 국제 비교 지표를 통해 본 대한민국의 정부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 정부 지출: GDP 대비 일반정부 총지출 비율은 한국의 정부 규모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다. 2020년 팬데믹 대응으로 일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이 비율은 37.1%로 OECD 평균(50%)에 크게 못 미쳤다. 프랑스(61.6%), 스웨덴(57.3%), 미국(47.8%)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이는 국가 살림의 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공공 부문 고용: 총 취업자 수에서 공공 부문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한국이 '작은 정부'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공공 부문 고용 비중은 10.2%로, OECD 평균(약 2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교 대상 국가 중 프랑스(21.2%), 영국(16.0%), 미국(14.9%)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이며, OECD 내에서는 일본과 함께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 조세 부담: 정부 활동의 재원이 되는 세금 부담 역시 낮은 수준이다. 조세부담률(GDP 대비 총조세 비중)은 2023년 기준 19.0%로 추정되어 OECD 37개국 중 31위에 그쳤으며, 이는 OECD 평균(25.3%)보다 6.3%p나 낮은 수치다. 세금에 사회보장기여금을 더한 국민부담률 역시 2010년대 초반 기준 25.1%로 OECD 국가들 중 멕시코, 칠레, 미국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 사회복지 지출: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Public Social Expenditure, SOCX) 비중은 한국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 지표다. 2021년 기준 한국은 15.2%로, OECD 평균(22.1%)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38개국 중 34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지출 수준은 낮지만 그 증가 속도는 지난 10년간 OECD 평균의 약 2배에 달할 정도로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사회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 지출이 급격히 팽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상의 계량 지표들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은 재정 규모, 공공 고용, 조세 부담, 복지 지출 등 모든 면에서 OECD 기준 명백한 '작은 정부'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동시에 복지 지출의 가파른 증가세는 한국이 정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정부'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과도기적 상황에 있음을 보여준다.

지표 대한민국 OECD 평균 미국 스웨덴
GDP 대비 일반정부 지출 비율 (%) 37.1 (2020) 50.0 (2020) 47.8 (2020) 51.6 (2020)
총 취업자 대비 공공부문 고용 비율 (%) 10.2 (2020) 21.6 (2021) 14.9 (2019) 29.1 (2021)
GDP 대비 조세부담률 (%) 22.1 (2022) 34.0 (2022) 27.7 (2022) 42.5 (2022)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 (%) 15.2 (2021) 22.1 (2021) 22.7 (2021) 24.9 (2022)
출처: 및 OECD Statistics 데이터 기반 재구성  
 
 
 
 
 

         
         

3.2. 질적 분석: 한국 정책의 내재된 모순

통계적 '작은 정부'라는 외형과 달리,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기조와 '큰 정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적 압력이 혼재된 모순적인, 이른바 '이중 트랙(two-track)' 전략의 양상을 띤다.

3.2.1. '작은 정부' 지향 정책

현 윤석열 정부는 시장과 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작은 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 이전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집값 폭등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시장 정상화를 목표로 규제 완화에 집중하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배제,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을 줄이고, 민간 주도의 공급과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명백한 '작은 정부'적 접근이다.  
     
  • 노동 개혁: '노사 법치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노동 시장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건설 현장 불법 행위 근절, 고용 세습 등 위법한 단체협약 시정 등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줄이고 시장 원리를 바로 세우려는 시도다. 또한, 근로시간 제도 유연화 논의는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정책: 기업의 투자 유인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를 내세우며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3.2.2. '큰 정부' 지향 정책

그러나 동시에, 정부는 심화되는 사회 문제와 인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들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는 현실적 필요에 따른 불가피한 대응에 가깝다.

  • '약자 복지' 기조와 복지 예산 팽창: 정부는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는 '약자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7년 만에 상향 조정하고, 기준 중위소득을 3년 연속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다. 또한, 부모급여 도입 및 확대, 기초연금 단계적 인상 등 저소득층, 아동, 노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현금성 복지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는 수혜 대상을 선별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와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복지 예산의 급격한 팽창과 국가의 책임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 필수의료 분야 국가 책임 강화: 붕괴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 향후 5년간 '10조 원 + α' 규모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등 국가가 의료 공급 체계에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개입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서 시장 기능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가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는 '큰 정부'적 발상이다.  
     
  • 전략 산업에 대한 국가 주도 육성: 반도체, 바이오·디지털 헬스 등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전략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R&D 투자 확대, 인재 양성,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전통적인 산업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3.2.3. 종합: 모순 속의 전환기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현재 '작은 정부'의 외형을 가졌지만, 내부적으로는 거대한 전환의 압력을 받고 있는 모순적인 국가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시장과 기업을 위해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낮추는 '작은 정부'의 길을 가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사회 안전망 붕괴라는 거대한 '시장실패'에 직면하여 복지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늘릴 수밖에 없는 '큰 정부'의 길로 떠밀리고 있다.

이러한 '이중 트랙'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보수적 지지층과 시장의 요구, 그리고 복지 확대에 대한 국민적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재정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와 정책적 비일관성이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질문은 더 이상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국가 역할의 확대를 어떻게 재정적으로 감당하고,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제4장: 제언: 대한민국을 위한 '효율적 국가' 청사진

대한민국이 직면한 전례 없는 도전들은 과거의 낡은 이념적 틀로는 해결할 수 없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를 넘어,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설계해야 할 때다. 본 장에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이나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한국의 미래를 위한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국가(Smart and Effective State)'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4.1. 모방을 넘어서: 한국적 사회 계약의 필요성

미국과 북유럽 모델은 각각 중요한 교훈을 주지만, 어느 쪽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이식될 수 없다.

미국의 '작은 정부'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한국의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켜 사회 통합을 저해할 위험이 크다. 미국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단기적 효율성을 위해 사회 안전망을 희생시킨 대가는 결국 장기적인 사회 불안과 경제적 비효율로 되돌아온다.

반대로, 북유럽의 '큰 정부' 모델은 한국의 정치·문화적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 기반인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 강력하고 중앙집권화된 노조,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의 문화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낮은 사회적 신뢰, 분절된 노동 시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높은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의 정책 경로는 세계 최저 출산율, 역사상 가장 빠른 고령화, 높은 노인 빈곤율, 그리고 깊게 뿌리내린 사회적 불신과 같은 한국만의 독특하고 절박한 문제들에 대한 맞춤형 해법이어야 한다. 이러한 실존적 위기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나 외국의 모델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황에 맞는 독창적인 사회 계약을 요구한다.

4.2. '효율적 정부'라는 새로운 비전

이제 논쟁의 초점을 정부의 '크기'에서 '효율성'과 '전략적 역할 배분'으로 전환해야 한다. 목표는 더 크거나 작은 정부가 아니라, 더 똑똑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국가'는 두 모델의 강점을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종합을 추구한다.

  • 경제 역동성을 위한 '작은 정부': 기업 활동과 시장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영역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혁신을 저해하는 진입 장벽을 낮추며, 비핵심 분야에서의 재정 지출을 엄격하게 관리하여 민간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옹호하는 작은 정부론의 핵심 원칙과 맞닿아 있다.  
     
  • 사회 투자를 위한 '큰 정부': 반면, 국가의 장기적 지속가능성과 인적 자본 개발에 필수적인 특정 영역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과감하고 급진적으로 확대한다. 이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의 개념이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시장실패에 대응하기 위해, 보육, 교육, 노인 돌봄과 같은 '돌봄 경제' 영역에서 국가가 핵심적인 공급자이자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싱가포르가 상업 활동에서는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주거와 노후 대비라는 사회 안정의 핵심 영역에서는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한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즉, 정부 개입의 총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사회적 수익률을 가져올 수 있는 영역에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4.3. 미래를 위한 핵심 정책 기둥

'효율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

4.3.1. 제1기둥: 전략적 재정 및 조세 개혁

  • 도전: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확대되는 사회적 필요를 감당할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 해법: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조세 개혁을 통해 현재 OECD 최하위 수준인 조세부담률 을 지속가능한 복지를 지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세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조세 구조의 합리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법인세는 국제 경쟁력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하되, 자본 이득이나 상속·증여에 대한 과세를 정상화하고, 경제 왜곡이 적은 소비세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모색해야 한다. 목표는 증세를 통한 경제 위축이 아니라, '성장 친화적 증세'를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4.3.2. 제2기둥: 견고한 사회 투자 국가 건설

  • 도전: 한국의 현재 복지 시스템은 사후적이고 현금 지원 중심이며, 분절되어 있다.
  • 해법: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국민의 생산성과 사회 참여를 높이는 '적극적 복지' 또는 '사회 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 보육 및 교육: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인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고품질의 공보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미래 세대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 노인 돌봄: 급증하는 노인 인구를 더 이상 가족의 희생에만 기댈 수 없다. 국가 주도의 보편적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강화하여 존엄한 노후를 보장하고, 여성과 중장년층이 돌봄 부담에서 벗어나 경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노동 시장: 고용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하고, 실직자를 위한 맞춤형 직업 훈련과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내실화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에게 안정성을 제공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한국형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의 기반이 될 것이다.

4.3.3. 제3기둥: 균형 경제를 위한 헌법적 소명

  • 도전: 정부 역할에 대한 논쟁이 소모적인 이념 대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 해법: '효율적 국가' 모델이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이 규정한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가의 의무를 현대적으로 실현하는 길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효율적 국가'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경제가 초래할 수 있는 불안정성과 불평등을 국가가 선제적으로 조정하고 보완함으로써 체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임을 의미한다. 국가는 시장의 파트너로서, 때로는 심판으로서, 그리고 필수적인 영역에서는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자유 시장 경제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결론

본 보고서는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해묵은 이념적 대립의 구도를 넘어, 정부의 역할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이론적 토대와 미국, 북유럽, 싱가포르의 사례 연구를 통해 각 모델의 명확한 성과와 한계를 확인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현 좌표를 진단했다. 분석 결과, 대한민국은 통계적으로는 명백한 '작은 정부'이지만, 인구 위기와 사회 양극화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여 국가 역할의 확대를 피할 수 없는 모순적인 전환기에 서 있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두 개의 낡은 외국 모델 사이에서의 부질없는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특수한 현실에 기반하여, 두 모델의 장점을 전략적으로 융합하는 새로운 길, 즉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국가'를 의식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국가는 시장의 역동성을 존중하여 경제 성장의 엔진을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미래 세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는 불필요한 영역에서는 과감히 후퇴하고(작은 정부), 국가의 미래가 걸린 핵심 영역에서는 책임 있게 개입하는(큰 정부) 전략적 지혜를 요구한다. 재정 및 조세 개혁을 통해 지속가능한 재원을 마련하고, 수동적 복지를 넘어 능동적 사회 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며, 헌법이 부여한 균형 경제의 소명을 다하는 것. 이것이 21세기의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실용적인 청사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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